영화 《엑시트》(2019) 감상 후기
한국 영화 중에서 재난 장르를 코미디와 절묘하게 섞은 작품은 드문데, 《엑시트》는 그 희귀한 균형을 훌륭하게 잡아낸 영화다. 사실 처음 개봉했을 때만 해도 큰 기대 없이 봤는데, 예상 외로 너무 재미있었다.
1. 줄거리와 설정: 평범한 인물들의 현실적 생존기
영화는 평범한 청년 용남(조정석)과 대학 시절 짝사랑했던 후배 의주(임윤아)가 유독가스가 퍼진 도심 한가운데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들이 특별한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슈퍼히어로 같은 능력도 없다는 것. 용남은 단순히 대학 시절 산악부였던 경험 덕분에 벽을 잘 탄다는 설정 하나로 극한 상황에서 생존해 나간다. 이 점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보통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군인, 소방관, 혹은 과학자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엑시트》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백수’와 평범한 회사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덕분에 몰입감이 훨씬 강하고, ‘저 상황이라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2. 액션과 긴장감: 현실적인 스릴러
이 영화의 액션은 일반적인 블록버스터처럼 화려한 CG나 폭발이 난무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이다. 건물 외벽을 오르고, 철봉을 타고 이동하고, 밧줄을 이용해 건너는 장면들이 연출되는데, 보는 내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된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용남과 의주가 도심 속 고층 빌딩을 넘나들며 탈출하는 장면이다. 배경 음악 없이 오직 숨소리와 건물 사이를 오가는 두 사람의 몸짓만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이 장면이 상당히 실감 난다.
게다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에게 한시도 긴장을 늦출 틈을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고, 간신히 해결하나 싶으면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억지스럽거나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3. 코미디 요소: 웃음과 긴장의 완벽한 조화
사실 재난 영화라고 하면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예상하기 쉽지만, 《엑시트》는 곳곳에 유머 코드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조정석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특유의 표정 연기가 큰 몫을 한다.
가족들이 모여 있는 생일잔치 장면에서부터, 용남이 탈출 도중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까지 코미디 요소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서 극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요소가 코미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용남은 부모님에게 늘 무능력한 아들로 취급받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용감하게 행동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의 소소한 갈등과 사랑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4. 임윤아의 재발견
《엑시트》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임윤아의 연기다. 사실 걸그룹 출신 배우들이 영화에 도전할 때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편견이 따르기 마련인데, 임윤아는 이 작품을 통해 그 편견을 깔끔하게 깼다.
의주 캐릭터는 단순히 남자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능동적인 캐릭터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돋보였다.
5. 결론: 재난 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
《엑시트》는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여기에 현실적인 설정과 코미디, 그리고 가족애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특히 조정석과 임윤아의 호흡이 좋았고, 감정적인 부담 없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유쾌한 재난 영화라는 점이 강점이다. 거대한 스케일이나 CG보다 현실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본다는 점에서 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추천 대상:
- 긴장감과 유머가 적절히 조화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현실적인 재난 영화에 흥미가 있는 사람
-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는 사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지 깨닫게 된다. ‘운동 좀 해둬야겠다...!’
열심히 살아야겠다.